제19화: 판을 뒤흔드는 자
연쇄 추돌 참사 환자 전원 생존.
사망률 0%라는 기적 같은 수치는 다음 날 아침 모든 중앙 일간지와 방송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언론은 서한국병원 중증외상센터를 '기적의 방패'라 칭송했고, 그 중심에 선 젊은 서전 강도진의 이름은 의료계를 넘어 대중에게까지 빠르게 퍼져나갔다.
하지만 본관 12층 병원장실의 공기는 축제 분위기와 정반대로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탁——!’
박진태 병원장이 조간신문을 집어 던지며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외상센터가 언론을 독식해? 백강현에 이어 강도진 그 애송이 녀석까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단 말이다!”
테이블 맞은편에는 고개를 푹 숙인 송민우 펠로우와, 날카로운 인상의 50대 남성이 앉아 있었다. 서한국병원 소화기외과 과장이자 차기 진료부원장 유력 후보인 최형석 교수였다.
“원장님, 조급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최 교수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외상센터는 칼을 쥐어줄수록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밑 빠진 독입니다. 환자를 살릴수록 고가의 혈액 제제와 특수 장비 비용이 소모되죠. 다음 주에 있을 보건복지부 평가와 예산 심의회에서 외상센터의 만성 적자를 명분 삼아 손을 묶어버리면 됩니다.”
“그걸로 충분하겠나? 놈 뒤에는 윤성호 의원이 버티고 있어.”
“그래서 진짜 ‘벽’을 준비했습니다.”
최 교수가 두꺼운 환자 차트 한 부를 테이블 위에 밀어 올렸다.
“성진그룹 차남, 구태훈 전무입니다. 췌장암 4기 판정을 받고 미국 유수 병원에서도 수술 불가를 선언한 케이스죠. 복강 내 주요 복강동맥(Celiac axis)과 상장간막정맥(SMV)이 암세포에 완전히 얽혀 있습니다. 이걸 외상센터에 ‘초고난도 다발성 혈관 침범 케이스’로 떠넘길 겁니다.”
박 원장의 눈이 번뜩였다.
수술이 성공하면 병원의 막대한 재단 기부금을 챙기고, 실패하면 언론에 치켜세워진 강도진과 외상센터를 ‘무리한 수술로 환자를 죽인 무덤’으로 만들어 단숨에 숙청할 수 있는 잔인한 덫이었다.
같은 시각, 외상센터 의국.
도진은 책상에 기대어 앉아 망막에 떠오른 시스템 상태창을 점검하고 있었다.
[플레이어: 강도진 (Lv.3)]
- 보유 스킬:
- 해부학적 직관력(Lv.2)
- 미세 혈류 제어(Lv.1)
- 순간 집중력 초월(Lv.1)
- 신경 감응형 메스 컨트롤(Lv.1)
- 누적 명성치: 2,400p (병원 내 인지도: '주목받는 천재 서전')
새로 개방된 [신경 감응형 메스 컨트롤]은 절개 부위의 미세 신경망을 시스템이 색채로 구분해 주어, 절개 시 신경 손상 확률을 0%에 수렴하게 만드는 파격적인 기술이었다.
‘쿵, 쿵.’
의국 문이 열리며 백강현 교수와 한수아가 굳은 표정으로 들어왔다. 백 교수의 손에는 방금 본관에서 이첩된 구태훈 전무의 차트가 들려 있었다.
“본관에서 폭탄을 던졌군.”
백 교수가 차트를 책상 위에 툭 던졌다. 한수아가 혀를 차며 차트를 넘겼다.
“미친 거 아니에요? Celiac axis 침범에 간동맥까지 다 감싸고 있는데 이걸 외상센터더러 췌십이지장절제술(Whipple)과 복합 혈관 재건으로 해결하라고요? 이건 그냥 죽으라는 소리잖아요.”
“거절할 명분은 없다. 성진그룹 측에서 외상센터의 혈관 문합 성공 기사를 보고 직접 지정 의뢰를 넣었으니까.”
백 교수의 시선이 조용히 차트를 분석하고 있던 도진에게로 향했다.
“도진아, 네 생각은 어떠냐.”
도진의 눈앞에 이미 시스템의 푸른 3D 홀로그램이 구태훈 전무의 복강 내부를 완벽하게 재구성하고 있었다.
[환자 분석: 췌장 체부암 및 침윤성 복강동맥 폐색] [수술 난이도: 극상(Hell)] [성공 솔루션 도출: 애플비 수술(Appleby operation: 복강동맥 합병 절제) 및 인공혈관 간동맥 우회로 조성] [성공 확률: 14% → '신경 감응형 메스 컨트롤' 및 '미세 혈류 제어' 연계 시 88% 도달]
남들에게는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불가능의 영역이었지만, 도진의 눈에는 암세포와 정상 혈관 사이를 가르는 0.5mm의 틈새가 선명한 궤적으로 보이고 있었다.
도진이 차트를 덮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빛에는 두려움 대신 서늘한 자신감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받겠습니다.”
한수아가 놀라 도진을 쳐다보았고, 백 교수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본관 놈들이 판 덫이라면…… 그 덫째로 부숴버리겠습니다.”